Chapter 2

예수는 오로지 한 명 인가?

예수가 둘이라는 이 주장을 꺼내기 위해선 먼저 다음과 같은 주장도 필요해질 것 같군요.


" 예수는 편부모이다. "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예수는 편부모라고 봐야 합니다. 

천천히 설명해보도록 하죠.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YHWH가 아니라 예수입니다.

뭐 신학적으로야 신이라고 불리는 YHWH의 아들이므로 서열상 신에 대적할 수는 없다는 해석이겠지만,
예수의 존재감은 엄밀히 따지면 '얼굴도,이름도 함부로 논해서는 안되는' 엄격한 신에 비하면 훨씬 접근성이 좋다보니 어떤 교회이건 YHWH를 모사하기 보다는 예수를 그래픽적으로 더더욱 많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예수의 특성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먼저 아버지의 아들인 부자(父子)로서의 예수입니다. 

가장 유명하고 보편적인 예수의 이미지이며 스스로도 주장했던 바였습니다. 


-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https://en.wikipedia.org/wiki/God_the_Father




그렇다면 두번째는 무엇일까요? 바로 어머니의 아들인 모자(母子)로서의 예수겠군요.


- 어머니와 그의 아들 예수
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B%A6%AC%EC%95%84%EB%A1%A0




굳이 도식화할 필요도 없군요.

예수에겐 아버지와 어머니, 즉 부모가 존재합니다.


직관적으로 따져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나온 아들인가요?
아버지인 YHWH와 어머니인 마리아는 그럼 결혼을 하였고, 그 아들이 예수가 되는 건가요? 


예수가 오로지, 단 한 명의 인물이라면, 

YHWH 아버지와, 마리아 어머니를 둔 예수는 왜 '셋이서' 가족 사진을 잘 찍지 않는 걸까요?



이 세 인물만이 존재하는 공간 에서 서열을 메겨보도록 해보죠.


아버지인 YHWH는 서열 1위이고, 그의 현신이자 아들인 예수는 서열 2위이며,

어머니이긴 하지만 단순 혈육에 불과한 인간 '마리아'.


만약 서열 2위가 '마리아'가 된다면 YHWH의 현신이자 아들인 예수는 서열 3위가 되는데, 이는 YHWH의 현신(現身)보다 마리아가 더더욱 높은 위치의 '신성'함을 가졌음을 시사하므로,

테오토코스(이후 챕터에서 서술)의 보편적 해석에 맞춰 "어떻게든" 해석해보자면 대략 마리아를 3위로 둘 수 있겠군요. 생각보다 복잡한 구도입니다.




하지만 안티오케이아의 성녀 '마가렛'(마르가리타/마리나 등으로도 표현됨)을 묘사한 그림에서는 이렇게 정의되어야 할 관계에 명백한 모순이 발견됩니다. 


- 로마 시리아 속주 안티오키아의 성녀로 불리는 '마가렛'.
안티오키아의 지사로 발령된 올리브리오가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아내로 삼고자하였으나
신앙을 버리라는 그의 권유에 완강히 거부,
이내 독방에 감금된다.
여기서 신앙을 시험해보고자 '용'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탄은 뭔 유혹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머리채를 잡히고 무릎이 꿇려진 다음
머리를 망치로 내려쳐대는 마가렛에게 학을 떼고 도망쳤다.
(가톨릭의 십자가 버전과 달리 오리지널인 안티오키아 정교회 버전에서 전승되는 망치 버전 이야기)





위 이야기에서는 큰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저 그림입니다. 


우측 상단의 천상(天上)에서 어떤 계시를 프로젝터 빔처럼 주욱 쏴주고 있는 모습을 잠시 확대해볼까요? 




'아기'예수와 마리아군요.


아버지인 YHWH는 집에 방치하고 모자끼리 외출을 한 걸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저기가 '집'일텐데 말이죠.


아버지는 어디갔습니까?


어째서 전지전능한 신은 간데 없이, '마리아'가 '신'인 듯한 묘사를 하고 있을까요?

마리아를 성인으로 공경한다는 천주교식 교리로 바라보더라도 뭔가 신기합니다. 성인으로 공경하는게 아니라 이건 아기예수와 '여신'의 모습 아닙니까?


마가렛은 독실한 여인에서 저 천상으로부터의 프로젝터 빔을 맞고 여전사로 각성했다는 이야기로 정리가 가능하네요.

전쟁의 여신 이 존재하고 지상에 개입을 한다면 딱 저 모습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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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로마신화에서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와 그의 아들이라 불리는 '에로스(큐피드)'.

그 모습이 기독교에도 '마리아'와 그 아들 '아기예수'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 사랑의 여신의 아들이자 사랑의 신, 에로스(큐피드). 그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언제나 아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 너의 원수조차 사랑하라며 '사랑'의 가치를 가르쳤던 예수.
마리아, 아니, 아프로디테이자 아르테미스의 아들이었던 사랑의 신이었기에 예수는 이타심이자
사랑을 가장 위대한 가치로써 세상에 퍼뜨렸던 것이다.


사랑의 여신이었던 '이난나'가 떠오르는 부분이군요.

이난나에 대해 부정적이신 분들 많으실 걸로 알아서 뭐 자세히 파고 들진 않겠습니다만,이 부분만큼은 짚고 넘어가야만 하겠습니다.


이난나는 '금성'을 주관하는 여신이고, 그 금성은 천문학자들에 의해 'Venus' , 즉 베누스이자 아프로디테의 명칭이 붙었다는 점입니다.



이난나(이슈타르)가 곧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으로 넘어갔음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여기까지 오셨다면 이제 YHWH의 옛 이름 또한 추측이 가능해지실 겁니다.

챕터 1에서 다신교와 유일신교의 한 끗에 불과할 뿐인 차이에 대해 설명드렸듯, 사실 다신교와 유일신교는 뭐 다를게 없습니다.

누가 그 신계(神界)에서 '서열1위'인가를 바라보면 결국 그들도 공통점을 가지게 됩니다. 유일신교라면서 결국 주변에 천사나 성인들 끼고 있는걸 보면 '진정한 유일신교'는 애초에 없습니다.

심지어 신의 정통명칭(라틴어) Deus 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Zeus)'와도 비슷한데, 생김새도 비슷합니다. 


(左) 고전적으로 묘사되는 神, YHWH의 형상

(右) 고전적으로 묘사되는 神, 제우스의 형상


게다가 제 두번째 블로그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외계인'이었던 에어럴의 증언 내용을 살펴보면, 
영(靈)을 포박하여 기억을 없애고 다시 지구로 내려보내는 구 제국의 전기망의 존재는, 제우스가 휘두르는 번개(아스트라페)의 그 기원을 짐작케 합니다.


아직도 잘 모르시겠다면 이건 어떨까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우레'라 함은 곧 신의 목소리입니다. 

우레와 같은 신이자 YHWH의 목소리.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시 29:3)





 YHWH 는 왜 제우스와 같이 전기(벼락)를 자신의 아이덴티티로써 들고 있는거죠?





결국 기독교에 나타난 마리아와 예수의 형상이 곧 '여신/아들'의 속성을 가진 '아프로디테/에로스'의 연장선이며, 전지전능한 神으로 대표되는 YHWH는 '제우스'의 연장선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게 됩니다.



이를 두고 보면 각자 다른 것을 관장한다는 소위 '부서장(部署長)' 神들은 사실 간판만 다를 뿐, 결국 하나의 형태로 수렴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름만 다르게 두었을 뿐, 사실 하나의 신을 두고 다른 명칭이 부여되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이난나-이슈타르 관련 정보들을 그간 읽어봤던 분들이라면 잘 알고 계실 부분일 겁니다.

다만 제가 이번 블로그에서 비틀고자 하는 것은 이 분들 사이에 널리 퍼진 다음의 전제입니다.


" 지하세계의 뱀눈깔귀신들의 대장인 '여신'과 그 아들인 아브락사스의 현신인 예수, 따라서 부활절이 되면 난생(卵生)인 아브락사스의 형태를 알리고자 '달걀'을 심볼로 내세우는 것이며, 이런 예수가 악신(惡神) YHWH의 아들임을 내세운 것 또한 무리가 아니다. " 



여신이건 남신이건, 마리아건 YHWH이건,

다 한통속이며 마귀들이자, 이를 두고 보지 못한 창조주의 지고지순한 의지가 이제 전세계에 강림하려 한다는 설입니다.


일견 그럴싸 해보입니다.

제가 그간 진행해본 연구에서도 확실히 '지하의 여신'이란 계속 나타나던 키워드였고, 

'YHWH'또한 그 맹렬한 추종자인 유대계 부호들과 그 세력이 존재하므로, 이 모두가 '적'이라는 견해를 가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일단 지금은 그 견해를 그대로 가진 채로 진행해보겠습니다.



저는 현대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가장 핵심인물인 '예수'를 관찰하였고, 예수의 상태가 2개의 Phase로 구성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수가 '하나'가 아닌 '둘'이라면,

이 두 Phase 중 아브락사스는 어느 쪽이며,  惡神의 감투를 쓰고 있는 것 또한 어느 쪽이 되는 걸까요?


아직은 둘 다 惡神의 잔상이라 상관없다, 뭐 이런 결론을 쉽게 내리실 수 있으실텐데요.

쉽게 결론을 내버리면, 관찰과 고찰 또한 쉽게 끝나버리는 법입니다.



일단 이 분쟁이 어떤 형태였는지, 그리고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를 밝혀야 지고지순한 창조주의 강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견해가 옳은 것이었는지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짚고 넘어가야만 하겠습니다.




어정쩡한 부활

예수의 죽음과 그 법의학적 분석


예수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요?

내가 YHWH였다면, 이제서야 막 개업한 이 '유대교'라는 Corporation System의 가급적 빠르고 완벽한 전파를 위해 전략을 세울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를 지상에 내려보내는 것이 YHWH의 전략이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예수는 한결같이 YHWH가 내려보낸 일종의 아바타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이 관찰됩니다.

불사의 신성하고 전지전능한 유일신 YHWH가 내려보낸 YHWH의 현신 예수가,어찌 사망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벤트의 방향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꼭 부활을 해야만 합니까?


애초에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은, 예수의 신체적 조건이 일반 인류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유대교의 어떠한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부활'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고 하기엔, 다음과 같은 방식이 좀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나서도 평온한 표정으로 한 점 흐트러짐없이, 일반 죄수라면 며칠도 안되어 끔찍하게 사망했을 형벌 속에서도 며칠이고 몇 달이 지나도 사망하지 않는 모습 말입니다.


즉, 부활의 예수보다는 불멸의 예수 가 더욱 더 이교도들에게 쎄게 어필할 것이고,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자들에게 엄청난 경종의 메시지를 줬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죽은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의 '부활'은 일종의 각성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신의 뜻인 예수에게 죽음을 기어코 강제한 당시 지배세력에 대한 경고이자 가장 효율적인 메시지로써 부활이 차용되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이 머리 속에 드실 분들을 위해서 조금 다른 관점을 써보죠. 


'법의학'적으로 말입니다.


예수의 부활 과정을 살펴보면 사흘 째 되는 날에 부활했다고 묘사됩니다. 사흘 "째"입니다. 사흘이 아닙니다.

 
즉 72시간이 안되는 시간이며, 묻힌 날을 첫째날, 묻혀있던 둘째날, 부활했다고 하는 셋째날이라는 계산인데 이를 토대로 살펴보면 예수의 신체는 사망한지 대략 48시간(±약간의 오차범위)이내로 살아돌아왔다고 할 수 있겠군요.



생각보다 사망해있었던 시간이 짧네요?



예수가 묻힌 곳이 어디었는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골고다 언덕, 즉 사막 기후입니다.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의 땅에서 십자가형을 당해 사망했다면, 통념적으로 알려진 법의학 상에서의 부패과정은 전혀 다르게 적용됩니다.


즉, 부패가 아닌 미라화가 시작된다는 것인데 미라화가 완료되기까지란 3개월정도나 시간이 필요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가 만약 아마존 밀림 한가운데서 십자가형을 당했다면 묻힌지 5시간도 안되어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었을 것이고 '부활'은 꿈도 못꿉니다.


밀림 숲 한 가운데서 사망한 사람의 시체는 불과 몇 시간만에 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 기후인데다가 땅속에 묻혔으므로 수분이 날아가질 못해 미라화가 시작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이고, 부패 또한 시작되기엔 시간이 더 필요했을 당시의 환경.

 
그런 조건에서 사망한지 며칠도 되지 않은 시점이라면...

사체를 온전히 보전하기에 완벽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수가 묻힌지 한참이 지나, 절대로 살아 돌아올 수 없을 시간이 지난 후에 부활하는 것이, 더욱 더 극적인 이벤트가 아닐까요?

적어도 일주일 정도 후에 부활해서 돌아오는 것이 더 극적이지 않습니까?



다시 돌아와서, 법의학(사체 보전 조건)적으로 살펴보면, 예수의 죽음이란 뭔가 어정쩡합니다.


부활이 강제된 것은 그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이니 그러려니  치더라도, 어째 부활을 굉장히 급하게 진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사막기후의 건조한 기후에서 밀폐된 관 속에 완벽하게 보존되어 매우 천천히 미라화가 시작되려던 예수의 사체.


저는 '신성한 영역'의 예수가 일반인이라면 절대 살아돌아올 수 없는 시간도 아닌, 법의학적으로 '부활에 유리하게끔' 48시간만에 다시 깨어났다는 점에서 이상한 느낌이 드는 군요.


예수의 이원화

두 세력이 충돌하는 지점

(左) - 예수의 부활을 예수 신앙의 가장 큰 근거로 삼는 개신교

(右) - 아기예수(부활이전 포함)를 예수 신앙의 큰 심볼로 삼는 천주교 
https://ko.wikipedia.org/wiki/프라하의_아기_예수



마리아를 인정치 않는 개신교에선 '부활'에 집중을 하고, 마리아를 인정하는 천주교에선 '아기예수(부활이전)'의 모습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저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단순히 한 인물이 겪은 과정이 아닌, 두 세력이 집중하고자 하는 각 단면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즉, 예수의 죽음 이전과 부활 이후에 나타나는 세력 별 이익 구조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앞서 위에서 설명했듯, 아기예수란 '어머니 신이자 사랑과 전쟁의 여신'의 아들인 사랑의 신, 큐피드이자 에로스와 그 모습이 같습니다.


- 예수는 사망하기 전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 하였으며,  
애제자였던 사도 요한에게는 "이 분이 너의 어머니이시다"라며 유언을 남겼다.
즉, 내 어머니가 곧 너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 예수는 부활한 이후 가장 먼저 마주친 마리아를 향해 '왜 울고 있는가, 누구를 찾길래'라고 질문한다.
죽음 이전의 어머니에 대한 그 공손함이 어딘가 사라져 있는 듯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는데, 바로 '만지지마'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왜 살아돌아온 아들은 어머니의 포옹이나 스킨십을 경계한 것일까?

자신의 죽음을 슬퍼한 어머니를 향해 '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께로 올라가겠다며
모두에게 그 뜻을 알리라고만 전할 뿐, 마리아는 그 이후 부활한 예수와 관계되지 않는다.




예수를 죽음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각각 1차와 2차로 명명하여 살펴보면,


  1. 그리스-로마 신화의 여신과 아들 신이 YHWH 교 (유대교)에 나타났음. 모자지간의 모습이 강조됨.
  2. 부활 이후 예수는 모자지간의 예수로서가 아닌, 부자지간의 예수의 아이덴티티가 강조됨.


라는 상태라고 볼 수 있겠군요.
이름만 예수일 뿐, 사실상 서로 다른 두 세력이 이 지점에서 충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부활한 이후로는 제 어머니 마리아를 그냥 업무적으로만 대하는 모습을 보니, 부활 예수 세력은 어지간히도 마리아를 안 좋아하나 봅니다. 


이쯤 되면 한가지 퀴즈를 내도 될 듯 합니다.


" YHWH, 아버지 신은 예수를 내려보낸 당사자가 맞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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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성 YHWH 빠돌이인 유대교는 예수를 '가장 해로운 자'로 본다. 주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거짓된 주장이라는 것이다.


정황상 예수의 등장이 YHWH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군요. 즉 YHWH의 계획 상 예수는 등장할 이유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예수와 마리아라는 키워드 자체가 YHWH의 적성세력이었음이 드러나는 구간인데, 모순되는 점이 하나있죠.

예수가 스스로 '아버지의 아들'이라며 기적을 행하고 다녔다는 점에 있습니다.


YHWH, 즉 유대교가 발흥할 때 YHWH가 누누이 강조했던 것이 있죠.

" 나 외의 신은 섬기지 말라. "

유일신앙이 유대교의 그 근본적인 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대교가 점점 퍼지는 것에는 'YHWH 이외의 신은 없다'라는 대전제가 있기 때문이었죠.

출애굽기에서 YHWH를 제외한 다른 신들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던 사례를 통해 당대의 사람들은 '와 YHWH가 진짜 신이었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른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섬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YHWH와 Directors의 가장 큰 약점이었습니다.



예수가 '우리 아빠가 YHWH임'이라고 주장하자, 사람들은 '진짜...? 그럼 권능을 보여주시오'라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현대에 까지 이르는 예수 신앙의 그 근거 중 하나겠지요.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주장한 YHWH는 역설적으로 예수가 나타나 온갖 기적을 행하고 다니는 것에 대해 할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쟤 내 아들 아닌데'라고 하는 순간, 예수가 가진 권능은 YHWH의 그것이 아닌 '다른 신'의 것이 될 것이고, YHWH가 주장한 '유일신'이라는 대목이 와르르 무너져내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YHWH가 거짓을 말한 게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YHWH 입장에선 '내 아들 맞다' 라고 하고서 호시탐탐 예수라는 신체의 컨트롤을 노릴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고, 후대 개신교 (장로회)에서 마리아를 인간으로 격하시킴과 동시에 예수의 '부활'을 강조하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과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예수가 YHWH를 엿 먹일 수 있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내가 부활할 것이다' 라고 계획을 흘려놓고, 신적(神的)이지 않은, 그냥 보급형 인류 신체(Made in Earth)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죠.


신적(神的)인 신체가 아닌, 정말 너무나도 당대 인류와 똑같이 설계된 신체를 입고 활동하게 되면, '부활 계획'을 알고 있는 Directors, YHWH로서는 예수의 사망 시점을 노리며 면밀히 주시할 테고, 사망한 이후로 실시간으로 기능이 저하되어가는 예수의 신체를 빠르게 점해야 했을 겁니다.

게다가 출혈에, 못에 박혀서 일어나는 감염 등으로 신체 기능이 꽤 저하가 되었을테니, 일주일이나 뭐 몇개월 있다가 다시 부활하는 등의 극적인 모습은 생각지 못한 채 바로 영양 보급, 휴식이 필요했을 겁니다. 

72시간 이상 버티고 일어나기엔 예수의 신체 기능의 저하가 너무 빠르게 일어나는 중이었나 보군요. 

일반 인류의 신체였을테니,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 YHWH가 예수를 보낸 당사자이자 세력이었다면 예수의 신체는 부패가 발생하지 않는 특수한 신체였거나 혹은 더 오랫동안 사망의 시간을 견뎌도 충분했을 겁니다.

그러나 반대 세력이 예수를 내려보냈던 것이므로 YHWH 세력이 예수의 부활을 가로채려는 계획은 결국 각종 모순이 튀어나올 수 밖에는 없던 것이죠.


정리하자면, 예수의 처음과 끝이 똑같이 YHWH의 계획과 그 아바타였다면, 예수의 부활은 훨씬 더 신화적으로 묘사되었을 것이고, 유대교에선 예수를 메시아로서 대우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의 처음과 끝이 서로 다른 인격체였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이 법의학적인 측면에서 작위적인 느낌이 날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고, 유대교에선 예수를 가장 해로운 자로 보는 것입니다.



(左) - 2023년 개봉한 영화 '웡카'. 이 영화는 右측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이다. 즉 웡카의 탄생과 직결되는 스토리이며, 이 작품에서 웡카는 '어머니'를 따르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右) - 2005년 개봉한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 영화에서 웡카는 마지막에 가족에 대한 사랑을 깨우치며 치과의사인 백발의 '아버지'를 찾아 방문한다.

두 영화에서 드러나는 차이점은 분명 동일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에 대한 묘사가 완전히 극과 극으로 다르다는 점이며, 웡카의 부모에 대한 묘사 또한 다르다는 점이다. 이 두 작품을 종합해보면 웡카에겐 분명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그러나 작품에 드러나는 부모의 모습은 언제나 '편부모'이다.

이러한 두 영화의 본질은 '예수'의 성격에 대입해보았을 때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렇게 이번 챕터에선 두 명의 예수에 대해 설명해보았습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이 무엇일까요?


' 한 지붕 한 가족 ' 인줄 알았던 기독교라는 이 종교개체가 사실은 그 내부의 투쟁을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과 

기독교라는 것 자체가 두 세력의 투쟁의 산물이라는 사실이죠.


어차피 둘 다 악신 세력인데 이걸 왜 중요하게 보고 있냐고요?


인내심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금은 계속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뒤편에 나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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