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적군의 마음을 얻는 방법
여러분들께선 무엇인가를 '피해없이' 가져오려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것이 물건이라면, 깨지지 않게 가져오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고
그것이 어떤 장소라면 손상된 곳이 없이 가져오기 위해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그것이 '포로수용소'라면, 그 안의 '무고한' 수용자들의 피해가 없도록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간단한 문제 같아 보이는군요.
그렇다면 이걸 응용한 고급 문제를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져오려는 그것이, 행성이라는 "적군(敵軍)"의 거대한 요새이자 '포로수용소'이자 '시스템' 그 자체라면,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가져올 것입니까?

그 안의 포로들과 그들만의 사회가 바깥 세상에 대한 일말의 지식도 없는 사회로 이루어져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무고한 피해자가 늘어나게 된다면, 그 사회 속의 사람들은 당신의 대의명분에 동의하기는 커녕 당신과 대적만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견고한 시스템을 허물기 위해서는 역으로 '시스템' 그 자체의 붕괴를 노려야합니다.
그 어떤 조치도 시스템의 의도를 피할 수 없을테니까요.
시스템엔 반드시 허점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이 행성의 모습이란 神이 악마로부터 세상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끊임없는 소모전이 발생하고 있군요.
이에 휩쓸린 수감자들은 끊임없이 소모되어 죽고 다시 살아나고를 반복하며 이 굴레에 갇힌 모양입니다.
이상하네요.
악마는 왜 神이 시킨대로 악한 모습을 보여주며 끊임없이 수감자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키는 거죠?
神은 왜 유혹에 너무나도 약한 인체라는 옷을 수감자들에게 입혀놓고선 '유혹에 넘어갔다'면서 형벌을 내리기를 반복하는 걸까요?
神이 전지전능하다고 하는데 왜 진즉에 자기를 향해 도전할 악마들을 일망타진하기는 커녕, 그들이 커지는 것을 방조하는 걸까요?
악마는 자기들이 '악'하게 보이기를 원할까요?
왜 악마들은 쓸데없이 수감자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고 神은 수감자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그들을 품기는 커녕 악마들의 선동에 놀아나도록 방조하는 것이죠?
그리고 왜 神의 명령에 악마들은 한때 순순히 복종했던 거죠?
악마는 神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악마는 (한때 나마) 神의 종이라 할 수 있는데, 왜 진즉에 이런 폭풍을 끝내질 않았던 거죠?
수감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들이 이런 고통을 겪지 않도록 이런 파도와 폭풍 그 자체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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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이것이 시스템인 모양입니다.
수감자들은 오랜 세월을 살지도 못하고, 진실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전쟁의 바람으로 사라지거나 자연재해로 사라진 후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로 태어나기를 반복하며 영원히 이곳에 갇히는 시스템인 모양이군요.
섣불리 이 악랄한 시스템에 대해 강제 합병을 시도했다간 시스템의 주인이자 善의 역할을 맡은 '神'의 위치만 공고해질지도 모르겠군요.
이 "역할극"을 되도록 건드려서는 안되겠습니다.
시스템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지휘권인 神이라고 불리는 영역이 있군요.
지휘권의 명령을 받으며 수감자들을 탄압하는 '악마'라고 불리는 영역은 지휘계통 상 아래에 있을 것입니다.
善에 도전하는 모양새를 취하여 수감자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 이들의 역할인 듯 한데,
그렇다면 교도소로 따져보면 교도소장과 교도관으로 나눌 수 있겠군요.
수감자들을 속이기 위해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교도소장인 神과 그들에게 감히 대적하는 교도관 '악마'로 나누어 싸우는 척만 하는 듯 한데.
여기서 우리가 이 시스템을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평정하기 위해선 시스템 내부의 '다수'를 차지하는 저 교도관들을 움직여보면 어떨까요?
교도관들 또한 神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있을 뿐인 모양인데, 절대 다수의 교도관들의 마음을 얻는다면 이 시스템은 교도소장 세력인 지휘권의 고립을 불러올 것입니다.
마침 神과 대적하는 악마라는 역할극이므로,
악마가 극히 세력을 불리는 그 '장면'에서 악마 교도관들의 神을 향한 진심 펀치를 통해 두들겨 패버려 그들을 무대 뒷자락으로 끌어내버리고,
神이 승리하는 그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악마 가면을 쓰고 있던 교도관들이 일제히 '神'의 가면을 쓴다면, 이 악랄한 시스템 그 자체를 붕괴시키지 않고 온전히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한때 '악마' 역할에 배정받았던 교도관들은 외부에서 조력해준 당신과 협력관계가 될 것이고,
이전 神의 역할이었던 그 지휘세력을 수감자로 끌어내려 그들이 일으킨 온갖 고통을 그대로 되갚아주는 것 또한 가능해지므로 '적군'의 수용소를 가장 이상적으로 인수하는 방식이 되겠군요.
정치적인 이유거나 트집을 잡혀 끌려온 수감자들에겐 고통이 없는 방식으로 이 시스템으로부터의 석방을 이끌어내기도 유연해질 것입니다.

- 어떠한 시스템계(界)가 있다면,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하기 위해 그 내부의 상대적 약자의 지지를 얻어내야만 한다.
그들이 내전으로 공멸하게 방치하게 두고, 그 잔해 위에 올라서는 것은 시스템에 예속된 수감자를 배려하지 않는
'파괴' 그 자체이다. 시스템에 예속된 수감자를 '사랑'한다면 이 역할극에서의 모순을 이용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매우 정밀하게 준비된 쿠데타가 필요해지겠군요.

- 천사와 악마 , Angels and Devils , M.C. Escher
"하나의 그림"에 "두 가지 형상"이 공존하는 기이한 형상.
善이어야할 자리에 善과 惡이 동시에 몰려있는 이러한 뒤죽박죽 테셀레이션 이미지.
이를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역사의 가장 가까운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두 명의 예수'입니다.

